뜻하지 않게 만난 이웃의 살뜰한 보살핌에 여독 ‘훌훌’
뜻하지 않게 만난 이웃의 살뜰한 보살핌에 여독 ‘훌훌’
  • 박윤수
  • 승인 2019.05.23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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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계속된 설사에 ‘병원행’
현지인 가득한 응급실로 찾아온
한국인 의료자원봉사 닥터부부
입원 내내 자주 들러 건강 염려
오지봉사 생생한 체험도 들려줘
이국땅서 27년간 인술 펼치는
고교시절 친구 도움도 받아
현지에 자선 베푸는 우리이웃과
외지인 챙기는 현지인에 ‘뭉클’
아디스아바바전경
아디스아바바 전경.
 
주치의
MCM병원 국제병동에서 주치의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박윤수의 길따라 세계로, 아프리카<4> 아디스아바바

밤새 비스킷 몇 개만 먹고 계속 설사를 했다. 어서 아침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뜬눈으로 밤을 보내고 호텔식당에서 아침으로 준비된 달걀 후라이와 토스트는 한입만 베어물고 다시 방으로 왔다. 먹은 것이 없으니까 설사가 잦아들었다. 서둘러 짐을 챙겨 공항으로 가는 도중 이곳 에티오피아에서 의료봉사 중인 고교 친구에게 전화를 하니 친구가 있는 병원은 아디스아바바에서 한시간 거리인 짐마Jima라는 도시라고 한다. 내심 아디스아바바로 가서 다시 국내선을 갈아타고 친구에게 가려고 생각했으나, 증상을 듣던 친구가 아디스아바바에 한국병원이 있다고 그곳으로 가라고 한다.

반가운 말이다. 이 먼 곳 에티오피아에 한국인이 운영하는 종합병원이 있다는 것이, 구세주를 만난듯한 기쁜 소식이었다. 랄리베라공항에 도착, 짐을 챙겨 티켓 카운터로 갔다. 아디스아바바행 아침 비행기 티켓을 사려고하니 만석이라고 한다. 기운이 빠져 대기 의자에 엎드려 있었다. 일행들이 공항사무실을 다니며 취소된 자리나 비상용 좌석을 알아 봤다. 어렵사리 좌석 하나를 구했다. 티켓 카운터가 아닌 사무실로 들어가 현금을 주고 항공권을 샀다. 일행들은 티켓이 구해지는 대로 뒤따라오기로 하고, 아디스아바바에서 만날 장소는 공항 인근의 한국인이 운영하는 레인보우식당으로 정하고 혼자 비행기에 올랐다. 한시간 남짓 비행을 한 뒤 아디스아바바 국내선 공항에 내렸다. 20kg이 넘는 배낭을 메고 택시 승강장으로 향했다. MCM병원으로 가자니 여기저기서 호객을 한다. 적당한 금액의 택시비(200Br)를 지불하고 공항에서 10여 분 거리의 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병원이라고 해서 한국 의사를 만날 수 있는 줄 알았는데 응급실에는 현지인들만 보인다. 일단 설사 증세가 심하다며 스탭들에게 한국 의사를 만나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다. 나의 요청에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고 그네들이 진료하려고 한다. 몇 번의 승강이 끝에 한국인 의사들은 인터내셔널 파트(International Part)에서 있다고하여 지친 몸을 겨우 수습하여 국제병동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국제병동으로 들어가다가 마침 점심식사를 하러 병원을 나오던 한국인을 만나 사정 설명을 하고 진료를 청하니, 지금 점심시간이라 의사분들이 안계시니 이 곳 로비에서 조금 기다리라고 한다. 대기실에서 기다리면서 여권을 제시하고 접수를 하니 현지직원이 이층 내과로 가라고 안내한다. 기운이 빠져 점점 무거운 배낭을 메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으로 가서 병원복도의 간이소파에 누워 진료실이 열리기를 기다린다. 점심시간이 지났는지 간호사가 진찰실로 안내한다. 한국인 의사선생님이 걱정스러운 모습으로 문진하며 상태를 체크하고 입원을 권한다. 많은 외국여행을 했지만 현지 병원에 입원하는 것은 처음이라 병원비용이 덜컥 걱정되었다. 입원서류를 받아 들고 1층 접수처로 갔다.
 

MCM병원
MCM병원

 

MCM병원은 한국의 명성교회에서 투자하여 운영한다고 한다. 입원수속을 밟기 위해 접수처 여직원과 입원병실에 따른 병실료를 이야기 하던 중 입원료가 하루에 한화로 수십만원이라고 한다. 고가의 병원비로 어떻게 하나 고민하는데, 병원 재무를 담당하는 한국인 재무책임자가 초췌한 모습의 나를 보고 비용이 많이 드니 응급실에서 링거수액 투여를 하고 가라고 한다. 나 또한 고액의 병원비가 부담이 된 터라 그러마 하고 응급실로 가서 링거를 맞기 시작했다. 링거 두병 째를 맞고 있으니 정신이 좀 든다. 설사가 계속되어 응급실 화장실을 가니 변기가 일부 파손되어 변기에 걸터앉지를 못하고 올라가서 쭈그려 간신히 볼일을 보았다. 현지인들이 사용하는 곳은 시설물을 바로바로 보수하진 않아 열악하다.

 

아디스아바바 MCM종합병원의 병실.

현지인들이 가득 찬 응급실에서 고립무원, 좁은 침대에 분실 우려로 배낭까지 안고서 링거를 맞고 있는데 한국말로 나를 찾는 이가 있었다. 점심때 국제병원 로비에서 만난 사람이었다. 점심식사 후 나를 도와주려고 했는데 진료중인 나를 찾지 못하여 걱정했다고 한다. 퇴근길에 접수처에서 그와 친한 현지 직원이 나의 상태가 좋지 않은데 링거만 맞고 퇴원한다고 이야기해서 찾아 왔다. 치과에 근무하는 이로 의료봉사를 하러 부부가 이곳에 자원하여 나와 있다고 한다. 이 상태로 여행을 계속하면 위험하다는 그의 설득에 입원을 결정하고 혈액과 변검사를 하고 외국인 병실로 입원하였다. 그는 입원 치료기간 내 자주 병실을 들러서 아프리카의 풍토병 등 여행 중 건강관리에 대한 이야기와 이곳에 온지 3년이 된 본인의 오지 봉사경험 등 아프리카 오지의 사람들에게 존중받게되는 생생한 체험담을 들려주었다. 또한 며칠간 제대로 음식을 먹지 못한 나를 위해 부인이 쌀죽을 쑤어 주기도 했다. 퇴원할 때 감사한 마음에 조그마한 성의를 표하려고 해도 정중히거절하여, 귀국 후 봉사에 필요한 물품을 사서 보내주겠다고 약속하고, 귀국하여 작은 정성이나마 현지에서 필요한 물품을 보내드렸다.

MCM General Hospital은 김영삼정부때 에티오피아 정부의 요청으로 명성교회에서 지원해 시작됐으며 이제는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의 가장 중요한 병원 중 하나로 발전했다. 의과대학도 같이 운영하여 현지인의 건강증진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고 한다.

깨끗하지 않은 생활환경을 간과하고 별 조심없이 먹은 음식으로 4일 밤낮을 고생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메켈레의 카리부식당에서 가지고 온 햄버거가 원인이었다. 햄버거 패티나 아니면 햄버거를 두 토막으로 자른 칼, 도마 등 의견이 분분하지만, 포장하여 하루 밤을 숙소에서 두었다가 먹은 두 사람이 장염에 걸렸다. 특히 나는 이질성 병원균에 감염되어 혈변을 보며 고생했었다.

입원한지 삼일이 지나도록 밤새 한시간 간격으로 혈변이 계속되었다. 아침 회진시간에 주치의에게 이야기 하니 일반 장염이 아니라 이질성 장염이라고 다른 약을 처방하고, 링거를 추가해 퇴원이 불분명해졌다. 다행히 오후에는 증상이 완화되어 점심식사 후 퇴원하여 일행이 기다리는 숙소로 갔다. 숙소 인근 레인보우 한식당으로 가서 오랜만에 청국장으로 식사했다. 아직 몸상태가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아 먹는 것이 조심스럽다. 당초에는 아디스아바바에서 한국참전용사기념공원과 그들이 사는 곳도 방문하고 전통시장인 마르게르를 가보고 다운타운인 피아사거리 등을 둘러 볼 계획이었으나, 입원기간 동안 기다려준 일행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어서 이 곳을 떠나고 싶은 생각도 들어 탄자니아 세렝게티를 향해 출발하기로 하고 내일 아침 일찍출발하는 킬리만자로 공항행 티켓을 예약했다.

아프리카에서 30년 가까이 인술을 베풀며 후학을 양성하고 있는 유덕종 박사의 해외봉사일지를 담은 책.
아프리카에서 30년 가까이 인술을 베풀며 후학을 양성하고 있는 유덕종 박사의 해외봉사일지를 담은 책.

 

아픈 동안 뜻하지 않게 좋은 분들을 만나 도움을 받고, 현지인들의 삶에 봉사하는 우리의 이웃들도 보고 여행자들의 건강도 살뜰이 챙겨주는 따뜻한 현지인도 만났다. 특히 이곳 에티오피아에는 경북대학교 의대 졸업 후 전문의 과정을 마치고 종교적인 신념과 인술을 펴고자 하는 일념으로 미지의 땅에서 생활 하며 27년간 의료봉사를 하고 있는 친구도 있었다. 그 친구 덕분에 감사하게도 병을 치료하고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지면을 빌어 친구의 헌신에 존경과 감사의 말을 전하고자 한다. 청구고등학교 동기인 유덕종박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정부파견 의사로 이곳 아프리카에 와서 약 30년 가까이 인술을 베풀고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자세히 알리고자 하였으나 본인이 원치 않아 간략히 소개하고 넘어간다.

에티오피아는 곳곳에 대형 도로공사들이 한창이다. 발전의 속도로 눈 부신듯 하다. 만나는 사람마다 먼저 “차이니즈?”라고 묻고 “노”라고 하면 “자패니즈?”라고 되 묻는다. “코리안”이라고 하면 엄지를 치켜 세우며 “넘버원” 혹은 “안녕하세요?”라고 한다. 중국이 많은 원조와 물량 공세로 아프리카를 돕고 있지만 국민들에게 인심을 얻지는 못한 듯하다. 반면 한국의 K-POP 혹은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인들에 대해서는 호감이 있다. 특히 에티오피아인들은 한때 한국을 도왔다는 자부심과 아프리카대륙이 제국주의 열강의 식민지배에 시달릴 때에도 4년여의 이탈리아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며 온전히 독립국가로 정체성을 유지해 왔다는 자긍심으로 여타 아프리카의 국민들과는 다르다는 우월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아프리카의 다른 민족들과는 얼굴이나 체형이 서구인에 가깝고 이목구비가 뚜렷하여 미남 미녀들이 많기도 하다. 또한 커피의 종주국이어서 독특한 커피문화를 가지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여행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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